이전 글에서는 행동주의 이론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한 자극-반응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지켜보고, 그 결과를 해석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학습을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사회인지이론이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에 의해 정립된 이 이론은 단순한 행동의 반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학습의 복잡한 과정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관찰을 통한 학습
사회인지이론의 첫 번째 핵심 가정은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행동주의에서는 시행착오를 통해 바람직한 행동이 남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사라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회인지이론은 인간이 굳이 직접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모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반응을 습득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부모나 교사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컨대, 한 학생이 선배가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거나, 선생님에게 건방지게 말하는 또래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행동을 모방하게 될 수 있다. 이처럼 관찰 학습은 행동을 수행하기 전부터 이미 학습이 일어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두 번째 가정은 학습은 반드시 행동 변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행동주의에 반하는 전제지만 개인적으로 이 견해에 동의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어도 그것이 당장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학생은 축구 드리블을 배우자마자 시도할 수도 있지만, 어떤 학생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체로 캠퍼스를 걷는 모습을 아무리 많이 봐도 절대 따라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습은 내면적이고 인지적인 변화이며, 언제 어떻게 행동으로 표현될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의 행동은 일부일 뿐이다.
행동의 동기
사회인지이론은 단지 학습뿐 아니라 동기 역시 인지에 의해 조절된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자기효능감이다. 다음 글에서 자기효능감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신이 특정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학습자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지연이는 농구에 대한 자기효능감이 낮았고, 태진이는 대수학 문제를 푸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이런 낮은 자기효능감은 학습의 동기를 약화시키고, 실제 성취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살펴보면 자기효능감이 낮은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경향이 적다. 이런 친구들은 작은 성취를 통해서 자기효능감을 찾는 게 중요하다.
환경과의 영향
전통적인 행동주의는 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만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사회인지이론은 인간도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즉, 환경, 행동, 개인 변인이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는 개념이다. 이를 상호적 인과성이라고 부른다. 오늘 어려운 말이 많이 나오니 잘 집중하셔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과학 수업을 선택하거나 함께 지내는 친구 집단을 결정하는 것도 학습의 기회를 바꾸는 행동이다. 또한 성격, 동기, 가치관 같은 개인 특성 역시 학습 환경을 조형하는 중요한 요소다. 개인의 특성이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의 행동을 통제한다. 제한적인 환경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조절하는 자기조절 능력을 갖게 된다. 학습자는 자신의 행동을 계획하고, 진행 상황을 점검하며, 필요할 경우 전략을 수정하면서 점점 더 자율적인 존재로 성장해 나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개인 변인의 힘이 커진다고 본다.
강화와 처벌
사회인지이론에서는 강화와 처벌의 역할이 행동주의보다 덜 강조되지만, 여전히 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요한 점은, 학습자가 자신의 행동과 결과를 연결 지을 수 있어야 강화와 처벌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에세이에서 A를 받았지만,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피드백이 없다면 그는 다음에도 A를 받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 반면 “논리적인 전개와 세 가지 예시가 좋았다”는 피드백이 있다면, 그 경험은 학습자가 A를 받을 행동을 반복하도록 돕는다. 잘 됐다면 잘된 이유를, 잘 안 됐다면 잘 안 된 이유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이 강화되거나 처벌받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대리 강화 또는 대리 처벌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컨닝하다가 F학점을 받는 것을 목격하면, 다른 학생들은 컨닝을 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어떤 질문을 한 학생이 “그건 멍청한 질문이야”라고 조롱당한다면, 다른 학생들은 질문 자체를 꺼리게 될 수 있다. 이처럼 간접 경험은 바람직한 행동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기대
사회인지이론에서는 특정 행동의 원인과 결과의 연결성을 바탕으로 한 기대가 학습의 열쇠다. A 행동을 해서 B 결과가 나왔다면 다음부터 그 사람은 A 행동을 하면서 B 결과를 얻는 걸 기대할 것이다. 그렇듯 사람은 결과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예컨대, 첫 번째 시험에서 교재 내용만 출제되었다면 이후 강의보다 교재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는 결과 기대가 학습자의 전략을 바꾸는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꼭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학생은 '잘난 척하면 친구들의 인정을 받을 것'이라 믿고 시험 점수를 자랑하지만, 오히려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반대로 '똑똑하면 왕따 당할 것'이라 생각해 일부러 학습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기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그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반두라는 기대된 강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그것은 일종의 처벌이라고 본다. 예컨대, 학급 임원 선거에 출마하며 칭찬이나 인정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탈락했다면, 다음에는 다시 시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규칙을 어겼지만 처벌이 없었다면, 그 행동은 오히려 강화되어 반복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변 학습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인지이론은 학습을 하나의 단순한 과정이 아닌, 관찰, 기대, 자기효능감, 자기조절,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복합적으로 얽힌 과정으로 본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단지 지식을 전달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을 보고, 결과를 예상하며,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점점 더 능동적인 학습자가 되어간다.
이제 교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닌, 학습자의 내면을 움직이는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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